▲24일 오후 강원도 춘천 강원대에서 진행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2022년 하계학술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동시장에서의 공정ㆍ유연ㆍ안정성'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이지예 기자 jyjy@)

노동시장의 화두로 떠오른 '공정'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노동시장에서의 공정을 주제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하계학술대회가 진행됐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와 강원대 비교법학연구소는 지난 24일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2022년 하계학술대회를 진행했다.

이번 학술대회 주제는 '노동시장에서의 공정의 의미와 평가'다. 지난해 사무직 노동조합 설립과 대선을 거쳐 오면서 공정은 노동시장의 핵심 가치 중 하나로 떠올랐다. 

김기승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노동 개혁이 국정과제의 최우선이 됐고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들 이슈에 대한 노사 간의 이해 대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첨예할 가능성이 높아 학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첫 순서로는 '노동시장에서의 공정ㆍ유연ㆍ안정성'을 주제로 한 토론이 진행됐다. 노용진 서울과기대 경영학부 교수가 사회를 맡고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유길상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노동 공약을 설계한 장본인이다.

유길상 교수는 새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노사정과 야당의 입장을 정리하면서 노사정 타협을 통한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유 교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일자리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고 그 기본방향은 노동시장에서의 공정성, 유연성, 안전성을 조화롭게 높여나가는 것"이라며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새 정부의 주요 노동정책인 근로시간과 임금체계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다.

김영문 전북대 명예교수는 "근로시간의 유연화, 임금체계의 유연화도 필요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안정화도 동반돼야 한다"며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기간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 국정과제에는 찬성하지만 상대적으로 손해 보는 측에게는 안정화 이익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새로운 기업활동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획일적 근로시간 규제 접근에서 벗어나 3년 내 창업기업의 근로기준법 적용 유예, 고연봉자나 스톡옵션 수령자의 근로기준법 이그젬션 등 과감한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며 "인플레이션 조짐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구매력 보장을 위한 임금 인상 요구보다는 임금 인상 요구를 유예해야 중장기적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정 삼성글로벌리서치 상무는 "시장의 원리와 사회통합 원리를 균형 있게 강화하자는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국정과제상 근로사간 유연화의 주요 대상은 화이트칼라로 보이는데 한국의 근무문화와 당사자 관점에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화이트칼라 직종의 업무는 업무 시간보다는 성과를 기초로 보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근로시간 규제 제외와 함께 관리방식과 근무 방식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문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1본부장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노동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말을 쓰면서 노동계를 개혁 대상으로 보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 본부장은 정부의 근로시간과 임금 정책에 우려를 표하면서 "사회보장 수준 자체를 획기적으로 높여가야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공정한 노동시장으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을 진행한 노용진 교수는 "공정은 자기중심성이 강해 이야기하는 주체에 따라 의미가 바뀔 수 있다"며 "학계에서 공정성 개념에 대한 다양한 차원의 연구를 할 필요가 있고 시장원리와 정부 정책의 구도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세션은 노사관계, 노동법, 노동경제, ILERA 장학생, 대학원생 세션으로 각각 진행됐다. 특히 노동법 세션에서는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주재로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성 ▲오스트리아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적용 구조와 기준 ▲간접고용 등 근로자의 사업장 편입에 따른 근로조건 설정 기준을 주제로 논의가 이뤄졌다.

단체교섭 사용자성 발제를 맡은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현대제철이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교섭 상대라고 판단한 중노위 판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희성 교수는 "중노위는 실질적 지배력을 적용해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했지만 법리 구성이 체계성을 상실했고 사실관계 판단에 오류가 있다"며 "개념이 지나치게 모호해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실질적 지배력설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조합법 규정들의 체계적 해석을 통해 사용자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희성 교수는 단체교섭상 사용자성을 판단하는 4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우선 사용자는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여야 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근로계약 체결과 근로조건 합의의 주체 ▲임금ㆍ급료 기타 금품 등을 지급하는 주체 ▲노동관계법상 사용자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주체 ▲직업으로서의 일을 부여하고 그 수행을 관리하는 주체여야 한다.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만 단체교섭 상대방으로서의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최홍기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도 실질적 지배력설과 중노위 판정의 문제점에 동의하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입법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개별 세션 이후에는 정기총회가 진행됐다. 총회에서는 김기승 학회장의 인사와 차기 임원 선출이 이뤄졌다. 

제33대 학회장으로는 김희성 교수가 선출됐다. 김희성 교수는 정기 정책토론회와 학술대회 기능을 강화하고 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학술세미나 정기 개최를 모색하는 등 학회 발전을 위해 힘쓸 계획이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